10/17/15

동행


 

Uzziah was sixteen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in Jerusalem fifty-two years. His mother’s name was Jekoliah; she was from Jerusalem. He did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just as his father Amaziah had done. He sought God during the days of Zechariah, who instructed him in the fear of God. As long as he sought the Lord, God gave him success . . . His fame spread far and wide, for he was greatly helped until he became powerful. 16 But after Uzziah became powerful, his pride led to his downfall. He was unfaithful to the Lord his God, and entered the temple of the Lord to burn incense on the altar of incense. 17 Azariah the priest with eighty other courageous priests of the Lord followed him in. 18 They confronted King Uzziah and said, “It is not right for you, Uzziah, to burn incense to the Lord. That is for the priests, the descendants of Aaron, who have been consecrated to burn incense. Leave the sanctuary, for you have been unfaithful; and you will not be honored by the Lord God.”
19 Uzziah, who had a censer in his hand ready to burn incense, became angry. While he was raging at the priests in their presence before the incense altar in the Lord’s temple, leprosy broke out on his forehead. . . King Uzziah had leprosy until the day he died. He lived in a separate house—leprous, and banned from the temple of the Lord.

2 Chronicles 26:3-19

아버지, 아버지께서 절 부르셨고 인도하셨습니다. 욕심 많고 교만한 저를 인내하시고 인도하신 당신만을 바라보며 이제는 당신과 동행하며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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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For a song in itself
Is not what you have required
You search much deeper within
Through the way things appear
You're looking into my heart

I'm coming back to the heart of worship
And it's all about you
It's all about you, Jesus
I'm sorry Lord for the things I've made it
When it's all about you
It's all about you, Jesus


The Heart of Worship by Matt Redman

예배 가운데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만 보게 하소서!

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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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now, this is what the Lord says—
    he who created you, Jacob,
    he who formed you, Israel:
“Do not fear,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summoned you by name; you are mine.

When you pass through the waters,
    I will be with you;
and when you pass through the rivers,
    they will not sweep over you.
When you walk through the fire,
    you will not be burned;
    the flames will not set you ablaze.

Isaiah 43:1-2

거센 물길과 불속을 지날지라도 
나를 만드시고 부르신 여호와가 나와 함께 하시나니
그를 믿자 두려워 말자



8/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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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자신의 느낌에 따라 평가할 때가 너무나 많다. 이것은 싱크대가 망가지고, 아이들이 징징거리며, 내야 할 고지서들이 쌓이고, 남편이나 아내가 실직한 상황에서, 배우자가 서로를 얼마나 로맨틱하게 느끼느냐에 따라 결혼 생활을 평가하는 것과 같다. 사실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로우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랑을 분명하게 경험하고 있지 못할 때라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항상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의 믿음은 그분의 선물이며, 이 믿음은 우리의 영적 훈련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그분의 은혜로 가능하다. 

나는 이책에서 습관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좋은 영적 습관들이 주는 큰 유익은 긍정적이며 주관적인 느낌이 없을 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의 시간을 가지며, 예배하고,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객관적으로 연습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마르바 던,<안식> 중

8/15/15

Celebration

 

축하는 고난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오히려 "깊은 고통 가운데 생겨난 기쁨이 축하의 순간들을 통해 커진다. . . 바르게 이해하자면, 축하는 삶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점점 깨닫는 가운데 그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르바 던, <안식>中

7/20/15

Quadosh



성경에서 가장 두드러진 단어 가운데 하나는 카도쉬(quadosh), 즉 거룩이다. 이 단어는 다른 어떤 단어보다도 신성의 신비와 위엄을 상징한다. 세계사에서 최초로 거룩의 대상이 된 것은 무엇이었는가? 산이었는가? 제단이었는가?

카도쉬라는 특별한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 창세기에서 창조기사 마지막에, 바로 시간에 대해서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 . "하나님께서 이 일곱째 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창 2:3). 창조 기사에는 공간적 차원에서 거룩하게 되었다는 대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적인 사고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다. 신화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후 성소가 세워질 거룩한 곳--거룩한 산이나 거룩한 샘--을 창조하셨을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거룩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시간 속의 거룩, 곧 안식일인 것으로 보인다.

. . . 현대 기독교에서 우리는 이러한 거룩한 시간의 개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우리는 자신의 성소에 집중하며, '교회'가 기독교 공동체의 사건들과 그 공동체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가운데서, 즉 시간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이 성소를 교회라고 부른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대신에, 예배당에 간다는 의미에서 '교회에 가고' 거기서 하나님을 발견하기를 기대힌다.

안식의 시간과 그 시간의 거룩함을 누리는 데 사용되는 물건들은 그 자체로써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더 분명해지게 하는 수단으로써 가치가 있을 뿐이다. . . 우리가 물질과 공간에 대한 소유를 그치고 안식일을 지킬 때, 시간이 우리를 소유하게 된다. 

마르바 던, <안식> 중

Security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안전이며, 우리는 성공적으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어리석은 짓을 다 한다. . . 우리는 자신을 경제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해줄 방법을 택하려고 여러 곳에 투자를 한다. 미국은 자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미사일과 폭탄과 발사 시스템을 점점 더 많이 만든다. 그런데 이 모든 것과 관련하여 우스꽝스러운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이처럼 거대한 핵무기 확산은 누군가가 사고로 또는 화가 나서 버튼을 눌러 우리 모두를 멸망시킬 위험을 증가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해를 끼친다. 우리는 더 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남보다 앞서가고 승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착취한다.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린다. 그러기에 감정적으로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가면 뒤에 자신을 숨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심히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안전을 확보하려는 우리의 시도 자체가, 국가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시도와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그 안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전문직, 경제, 정치, 기술적인 해결책, 이 모든 것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안전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숨기는 환영의 거미줄이다. 전문직 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주식 시장은 붕괴될 수 있다. 정당은 큰 실수를 할 것이다. 기술적인 해결책은 해결하는 문제보다 더 많은 문제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동일하다. 우리는 언약에 신실하신 그분을 믿을 수 있다.

. . .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관하기를 그칠 때, 우리는 노예처럼 비굴한 의존심이 아니라 더 큰 자유를 누리게 된다. 나는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려고 애쓰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은사와 자원을 관리하는 충성스런 청지기가 되기를 추구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철저히 누리는 특권을 선택할 것이다. 너무나 많은 상황이 나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염려한다고 해서 내게 그다지 유익할 것이 없다. 그러나 모든 역사 위에 주님이 계심을 믿는다면--그리스도의 흰말이 전쟁의 붉은 말, 경제의 검은 말, 고난과 죽음의 청황색 말과 함께 달리며 역사의 과정을 주관한다는 것을 안다면(계 6;1-8)--나는 나의 통제를 벗어난 힘에 대한 걱정을 그칠 수 있을 것이다.

삶에 있어서 나의 책임은, 나의 창조자와 그분의 뜻을 사랑함으로써 나를 창조하신 목적에 가능한 한 충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때 날마다 자유로이 그분과 동행하는 모험을 즐기며, 내가 하는 모든 것과 내가 되어 가는 전체 과정 속에서 그분의 임재를 연습할 수 있다.

마르바 던, <안식> 중

7/10/15



광야에서는 무엇을 쟁취하려는 믿음보다 그저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셨음을 인정하는 믿음이 더 필요한 것 같다. 히틀러에게 추방당해 미국으로 망명한 신학자 폴 틸리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큰 슬픔과 고통에 직면했을 때일수록 은혜가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 . 지금은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말라. 언젠가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구하지 말고, 아무것도 애써 보여주려고 하지 말고, 아무 것도 각오하지 말라. 그저 네가 받아들여졌다는 사실만을 받아들여라."

이것이 광야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삶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주어지는 상황과 순서대로 살아도 하나님의 은혜는 흘러나온다. 광야 생활에도 즐거움은 있다. 느린 걸음이 주는 여유가 있다. 참 신기하다. 천천히 걸을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빨리 달릴 때 불평이 더 많았고, 천천히 걸으니 오히려 감사할 것이 더 많아 보인다. 더 풍성한 삶의 이치를 발견한다. 내 고통을 아파할 시간도 얻는다, 고통당하는 이들의 아픔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애쓰지 않고 고요히 있어도 거저 위로를 얻는다. 연약한 나와 우리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광야의 시간이 느린 이유는, 아픈 사람은 충분히 아픔을 느끼라는, 울어야 할 사람은 실컷 울고, 분노할 사람은 실컷 분노하라는 뜻이 아닐까? 감정을 억누르며 고통을 외면한 채 그렇게 살지 말라고, 광야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다. 광어는 삶의 부조리로 인한 고통과 억울함을 견디게 한다. 광어는 극복해야할 곳이 아니라 그저 꿋꿋이 지나가는 곳이다. 포기하지 않고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김병년, <난 당신이, 좋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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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라는 단어가 이때만큼 절실히 와닿은 적이 없었다.

지금 살아내야 하는 현실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기를 잠시라도 게을리하면, 
내 삶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희망없는 나날일 뿐이다.


김병년, <난 당신이, 좋아> 중





6/23/15

1Kings 2:1-12

and observe what the Lord your God requires: Walk in obedience to him, and keep his decrees and commands, his laws and regulations, as written in the Law of Moses. Do this so that you may prosper in all you do and wherever you go
  
2015-03-26 열왕기상 2:1-12 “무엇이 잘살고 잘되는 것입니까?” (조정민 목사)

1. 성경은 잘사는 길을 가리킵니다. 말씀은 잘되는 삶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무엇이 잘사는 길이고 어떻게 잘되는 삶인지 항상 먼저 가르칩니다.
2. 잘살고 잘되는 기준은 오직 하납니다. 하나님 중심의 길이고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기준이 분명하고 그 기준은 영원히 불변입니다.
3. 시대는 변합니다. 가치관이 변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도 변합니다. 삶의 양식이 바뀐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말씀은 불변입니다.
4.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기준을 가진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는 부딪친다는 뜻이고 거스른다는 말이고 고난을 자초한다는 얘깁니다.
5. 그런데도 성경은 말씀대로 그 기준을 지키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모든 일이 잘되는 형통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보증합니다.
6. 사실입니까? 사실이 아닙니다. 결코 모든 일이 잘되지 않습니다. 요셉은 아무나 견디기 힘든 고난을 겪고 다윗도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습니다.
7. 그런데도 성경은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나 감옥에서나 형통했고, 남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지은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다고 기록합니다.
8. 왜입니까? 하나님의 길이 언제나 높고 하나님의 생각이 언제나 옳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동행이 더 높은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9. 차원이 다르면 비교는 무의미합니다. 시공의 안팎은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신앙은 단기간은 끝없는 고난이고 장기간은 영원한 형통입니다.
10. 이 간극은 믿음 이외에 극복할 방법이 없습니다. 증거를 구하지만 유한한 증거조차 무한한 가치를 입증하기에 턱없이 미흡할 뿐입니다.
11. 답답해 하는 인간에게 결국 순종을 요구합니다. 오죽하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겠습니까? 다 알 수 있으면 왜 순종을 얘기하겠습니까?
12. 순종하다가도 실수하고 실족할 수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실수와 실패를 탓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죄도 용서하십니다. 돌이키기만 하면… 돌이키려고 마음 먹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기뻐하십니다. 죄인은 그게 이해가 안됩니다.

What does it mean to prosper in God? Many men of faith endured suffering while they lived in this world. Their lives don't look like what people usually call prosperity these days. Wherever they went, may it be prison or dungeon, they praised the Lord, and God made them prosper according to his good will. It does not matter whatever I do or wherever I end up going, but Father, I pray that I may listen to you and obey your commands in every moment of my life. I want to prosper in your kingdom that is here and now and yet to come.

6/17/15

1Kings 1:38-53

49 At this, all Adonijah’s guests rose in alarm and dispersed. 50 But Adonijah, in fear of Solomon, went and took hold of the horns of the altar.

2015-03-25 열왕기상 1:38-53 “동아줄 같은데 반드시 끊어집니다.” (조정민 목사)
  1. 한여름 뭉게구름은 순식간에 일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때로 사람들의 이합집산도 그와 같습니다. 이해득실 따라 모였다가 흩어집니다.
  2. 아도니야가 다윗을 이을 것으로 생각하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솔로몬의 왕위 계승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 순간 아마도 등골이 서늘했겠지요.
  3. 세상에서는 ‘줄을 잘못 섰다’고 말합니다. 세월 지내보면 사람한테 섰던 줄은 별 것 아닙니다. 동아줄인 줄 알지만 언젠가 툭 끊어집니다.
  4. 한 걸음 먼저 가다 절벽을 만나기도 하고, 이 줄인가 저 줄인가 망설이다 기회를 잡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줄은 다 위태롭습니다.
  5. “아도니야에 줄 섰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벌떡 일어나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마치 가을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같은 모습이 선합니다.
  6. ‘아도니야가 왕이 아니라 솔로몬이 왕이다.’ 이 소식 하나에 사람들이 여기 저기로 부산히 움직입니다. 그 소식이 그만큼 중요한 탓입니다.
  7.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가 등등했던 아도니야는 성막으로 피해 번제단의 뿔을 잡습니다. 죄를 인정하는 것이고 살려달라는 간청입니다.
  8. 솔로몬이 간청을 들어줍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순종하면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않겠지만, 악한 의도가 드러나면 죽을 것이다.”
  9. 권력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입니다. 권력은 항상 내 편과 네 편으로 편을 가릅니다. 그래서 권력이 있는 곳에는 갈등과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10. 권력은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의 하납니다. 세력 균형이 있지만 결코 오래 가지 못합니다. 고작 한 쪽이 압도적인 힘을 지닐 때까지입니다.
  11. 솔로몬은 비록 왕위에 올랐지만 왕권의 안정을 위해 피를 흘릴 것입니다. 아도니야에 대한 시한부 면죄는 구실을 찾으면 철회될 것입니다.
  12. 인간은 인간을 용서할 능력이 없습니다. 죄인은 죄를 용서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용서할 수 있다면 신앙은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굳이 십자가를 지실 이유도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6/15/15

1Kings 1:28-37

29 The king then took an oath: “As surely as the Lord lives, who has delivered me out of every trouble, 30 I will surely carry out this very day what I swore to you by the Lord, the God of Israel: Solomon your son shall be king after me, and he will sit on my throne in my place.”

2015-03-24 열왕기상 1:28-37 “하나님 앞서지 않으면 사람을 앞섭니다.” (조정민 목사)
  1. 무엇을 보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며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생 무엇을 믿고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2. 다윗은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바라보지 않고 고난에서 구원하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3. 그 하나님은 기억 속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기도를 듣고 묵묵부답인 하나님이 아니라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4. 다윗은 그 믿음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 뜻 안에 있을 때나 잠시 잠시 그 뜻을 벗어났을 때나 하나님은 늘 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5. 그 믿음이 다윗의 능력입니다. 그 믿음이 다윗을 모든 고난에서 건졌습니다. 그 믿음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결같이 다윗을 사랑한 까닭입니다.
  6. 아도니야는 아버지의 믿음을 보지 못하고 아버지의 왕좌만을 보았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왕좌에 앉히신 분을 믿음으로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7. 그래서 조급합니다. 그래서 기다리지 못합니다. 결국 내 머리, 내 계략을 믿고 성급히 왕좌에 앉고자 하다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고 맙니다.
  8. 솔로몬은 아직 주도적으로 움직일 능력도 상황도 아닙니다. 일은 나단과 밧세바가 계획합니다. 마지막 결정은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9. 결국 인생은 믿음이 갈림길입니다. 믿음이 태도를 가르고 지평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나이 들어 이제 늙었지만 그의 믿음은 여전합니다.
  10. 하나님의 뜻이 솔로몬에게 있음을 믿음으로 확인한 다윗의 결단과 조치는 전광석화와 같습니다. 솔로몬의 즉위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11. “솔로몬을 내 노새에 태우고 기혼으로 내려가라. 나단이 그에게 기름 붓고 나팔을 불어라. 그리고 모두 ‘솔로몬 왕 만세’를 힘차게 외쳐라.”
  12. 내가 평생 애써도 되지 않을 일이 왕이 움직이면 단숨에 이뤄집니다. 내가 죽을 힘을 다해도 이뤄지지 않을 일이 왕이 결정하면 단번에 끝납니다. 어리석은 자는 혼자 동분서주하고 지혜로운 자는 조용히 하나님을 뒤따릅니다. 하나님을 앞서지 않으면 사람을 앞섭니다
Lord, please help me to see You in every trouble, instead of the trouble itself. Please help me to know You more and grow in such faith in You, so I will hasten and not delay to carry out Your will when the time comes.  

6/11/15

QT-1Kings 1:1-27

Now Adonijah, whose mother was Haggith, put himself forward and said, “I will be king.” So he got chariots and horses ready, with fifty men to run ahead of him. (His father had never rebuked him by asking, “Why do you behave as you do?” He was also very handsome and was born next after Absalom.)

2015-03-23 열왕기상 1:1-27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조정민 목사)
  1. 어느 나라건 왕들의 이야기는 무대 전면의 정사와 무대 뒤의 야사로 이뤄집니다. 그러나 열왕기는 어느 쪽도 아닙니다. 늘 하나님 기준입니다.
  2. 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사울입니다. 사울은 아들 요나단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에게 왕권이 넘겨집니다.
  3. 왕권 제도의 수립 과정에 이스라엘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는 사울과 다윗을 차례로 기름 부어 왕으로 세웠습니다.
  4. 다윗의 생애는 참으로 파란만장합니다. 누구보다 매력적이지만 왕이 되기 전이나 왕이 된 이후에나 그에게는 불행한 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5.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그리고 다윗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는 불행한 왕의 전형이었을 것입니다.
  6. 젊은 시절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가 지명수배자로 전락해 광야를 전전했고, 왕이 된 이후로는 아들의 반란을 비롯한 고난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7. 밧세바를 간음한 이후 다윗의 생애는 하강곡선을 그립니다. 차례로 아들들이 세상을 떠납니다. 다윗 눈에서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8. 밧세바가 낳은 아들 솔로몬이 아마도 노년의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나라건 권력의 승계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9.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는 다윗 생전에 왕위 계승을 확정하고 싶은 나머지 아버지의 뜻을 묻지 않고 일을 벌입니다. 그는 야망이 가득합니다.
  10. “내가 왕이 될 것이다.” 그의 마음은 이미 왕입니다. 그는 왕의 행렬을 갖추고 총사령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제 편으로 끌어들입니다.
  11. 그러나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것이야말로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섣부른 자랑의 시작은 언제나 몰락의 시작입니다.
  12. 아도니야는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습니다. 그는 축배를 드는 자리에 예언자 나단, 제사장 사독, 친위대장 브나야를 뺐습니다. 나단이 밧세바와 함께 다윗 왕을 찾으면서 사태는 반전됩니다. 왕은 죽는 날까지 왕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많은 은혜들을 저에게 허락해주셨는데 어느샌가 그 은혜를 제것으로 착각하고 제 스스로를 높이는 일에 몰두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자신을 높이는 인생이 얼마나 허망한지요. 얼마나 불안한지요. 얼마나 피곤한지요. 모든 것을 저에게 허락하신 주님의 주님됨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주님을 높이는 일에 힘쓰길 기도합니다. 모든것이 제 자리를 찾을 때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있음을 매순간의 결단을 통해 체험하길 원합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매일의 묵상과 순종을 통해 주님을 높이는 일이 곧 제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5/14/15

The identity of being, knowing, & doing

I had always understood my ancestry to be a tangle of African slaves, free men of color, French and Spanish immigrants, British colonists, Native Americans—but in what proportion?


. . . That’s how I remembered myself. I remembered that people of color from my region of the United States can choose to embrace all aspects of their ancestry, in the food they eat, in the music they listen to, in the stories they tell, while also choosing to war in one armor, that of black Americans, when they fight for racial equality. I remembered that in choosing to identify as black, to write about black characters in my fiction and to assert the humanity of black people in my nonfiction, I’ve remained true to my personal history, to my family history, to my political and moral choices, and to my essential self: a self that understands the world through the prism of being a black American, and stands in solidarity with the people of the African diaspora.

This doesn’t mean that I don’t honor and claim the myriad other aspects of my heritage. I do, in ways serious and silly. I read Philip Larkin and Seamus Heaney and love all things Harry Potter and “Doctor Who.” I study French and Spanish and attempt to translate the simplest poems by Pablo Neruda and Federico García Lorca into English (and fail awfully). I watch obscure French movies with subtitles. I attend powwows and eat fry bread and walk along the outside of the dancing circles with a kind of wistful longing because I want to understand the singing so badly, because I want to stomp the earth in exultation and to belong in that circle, too. But I imagine that my ancestors from Sierra Leone and Britain, from France and the Choctaw settlements on the Mississippi bayou, from Spain and Ghana—all those people whose genetic strands intertwined to produce mine—felt that same longing, even as they found themselves making a new community here at the mouth of the Mississippi. Together, they would make new music, like blues and jazz and Zydeco, and new dances, second lining through the streets. They would make a world that reflected back to them the richness of their heritage, and in doing so discover a new type of belonging. 

Cracking the Code by Jesmyn Ward 

Rather than using ethnicity simply as a census-type classificatory label, I am interested in it here as a phenomenological experience of relatedness to a historically unique and continuous collectivity. Ethnicity is "peopleness" relatedness, i.e., the sense of being part of a particular people, doing the things that this people traditionally does, and, therefore, of knowing (appreciating, sensing, feeling, intuiting) the things this people claims to know when it is true to its particular genius, to its own self, to its unique authenticity of being and doing.  

Fishman (1982, p. 7)

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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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fore, with minds that are alert and fully sober, set your hope on the grace to be brought to you when Jesus Christ is revealed at his coming. As obedient children, do not conform to the evil desires you had when you lived in ignorance. But just as he who called you is holy, so be holy in all you do; for it is written: "Be holy, because I am holy." (1Peter 1:13-15)

아버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무지속에서 살았는지요. 나의 눈을 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당신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전히 저를 억누르고 있는 옛습성들을 극복하길 기도합니다. 매순간 믿음으로 반응하고 결단하길 기도합니다. 매일 저를 말씀으로 깨우시고 말씀으로 붙들어주세요.


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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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How to Write a Thesis,” Umberto Eco walks students through the craft and rewards of sustained research.

. . . it’s about what, in Eco’s rhapsodic and often funny book, the thesis represents: a magical process of self-realization, a kind of careful, curious engagement with the world that need not end in one’s early twenties. “Your thesis,” Eco foretells, “is like your first love: it will be difficult to forget.” By mastering the demands and protocols of the fusty old thesis, Eco passionately demonstrates, we become equipped for a world outside ourselves—a world of ideas, philosophies, and debates.

A Guide to Thesis Writing That Is a Guide to Life by Hua Hsu

3/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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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과도기 노동실태와 대안 세미나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청년유니온 주최로 '청년 과도기 노동 실태와 대안'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2015.3.18 leesh@yna.co.kr

청년유니온 등 "인턴·수습은 사실상 헐값 노동"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인턴·현장실습·수습·견습·교육생 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교육'이 사실상 '헐값 노동'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청년유니온과 서울시특별시 청년허브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인턴, 현장실습, 수습 등 소위 '과도기 노동'을 경험한 233명에 대한 설문 조사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49%는 월급 60만원 이하를 받고 일했으며, 무급으로 일한 이들도 22.3%에 달했다.

이는 교육을 명목으로 하는 '과도기 노동'이 사실상 헐값 노동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이들 단체는 설명했다.

그나마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턴 교육프로그램이 없는 경우는 전체의 65.7%였으며, 인턴 담당직원이 없는 곳도 35.2%였다.

'과도기 노동'이 정규직으로 이어지기도 어려웠다.

조사 대상자들의 73%는 채용 연계를 보장받지 못했으며, 35.2%는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평가·이수 인증조차 받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는 인턴이나 수습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23∼33세 남녀 12명에 대한 심층면접 분석 결과도 발표됐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제품 디자인 관련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한 A(33)씨는 "한달 동안 12개 프로젝트를 맡았다"면서 "말이 인턴이지 정규직 일을 그대로 했다"고 증언했다.

웹디자인 업무에서 실습하며 6주에 20만원을 받았다는 B(23·여)씨는 "일을 하는데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비영리단체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C(25·여)씨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밥 시간은 정확히 지켜야 하는데 따로 시간이 없었다"면서 "행사 직전에는 계속 야근하고 행사 기간에는 모텔에서 쪽잠을 자고 일하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영상디자인 계열에서 인턴을 했던 D(23·여)씨는 "교육체계가 아무것도 없어 하다 하다가 안 될 때 옆자리 선배에게 조금씩 물어봐서 일을 했다"면서 "회사는 그냥 다 알아서 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사무관리 인턴을 한 E(24·여)씨는 "인턴을 했던 자체가 나 자신을 욕 먹이는 기분이라 '호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서 "인턴을 다시 하라고 해도 이제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과도기 노동은 본래의 취지에 맞게 안정적 일자리로 나아가는 사다리, 교량이 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악용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 것"이라면서 "교육은 교육답게 노동은 노동답게 과도기 노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vs2@yna.co.kr

3/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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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but in every situation,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present your requests to God. And the peace of God, which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 (Philippians 4:6-7)

어떤 형태로 응답하실지 모르나 당신 앞에 내 모든 염려와 걱정 내려 놓길 기도합니다. May your peace guard my heart and mind in Jesus. 

2/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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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anything, and your heart will certainly be wrung and possibly broken. If you want to make sure of keeping it intact, you must give your heart to no one, not even to an animal. Wrap it carefully round with hobbies and little luxuries; avoid all entanglements lock it up safe in the casket or coffin of your selfishness. But in that casket--safe, dark, motionless, airless--it will change. It will not be broken; it will become unbreakable, impenetrable, irredeemable. The alternative to tragedy, or at least to the risk of tragedy, is damnation.

C.S. Lewis

2/12/15

Big snow in the social media age








After looking at photos of other people’s snow-covered streets on Twitter and Instagram all day, it is both startling and rather comforting to venture outside. Up and down the block, at night under the streetlights, I see my neighbors, nearly all of them strangers, shovelling out their cars and driveways and sidewalks. We smile at one another and laugh, exasperated, and say the usual things you say in the face of such terrible weather. Sometimes we pause to take pictures of all the snow with our phones; some of them will be up on Facebook before long, but we won’t be seeing each other’s, since we aren’t really friends. Thankfully, though, other people we know elsewhere in town are doing the same thing, and we’ll hear about it soon.

- Ian Crouch

2/10/15

150208 주일예배

 The Lord who rescued me from the paw of the lion and the paw of the bear will rescue me from the hand of this Philistine.” Saul said to David, “Go, and the Lord be with you.” (1Samuel 17:37)
 
David said to the Philistine, “You come against me with sword and spear and javelin, but I come against you i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whom you have defied. This day the Lord will deliver you into my hands, and I’ll strike you down and cut off your head. This very day I will give the carcasses of the Philistine army to the birds and the wild animals, and the whole world will know that there is a God in Israel. All those gathered here will know that it is not by sword or spear that the Lord saves; for the battle is the Lord’s, and he will give all of you into our hands.” (1Samuel 17:45-47)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믿음은 overwhelming한 상황에서도 당신을 보는 눈이라 배웠습니다. 크고 작은 훈련을 통해서 모든 일 가운데 당신을 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지금 제 눈 앞에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이 보이는 여러 challenge들이 있지만 sword나 spear나 javelin이 아닌 오직 당신의 손에 제 humble한 도구를 맡겨드림으로 믿음을 배워가길 기도합니다. Lord, the battle is yours. Please help me to accept this simple truth, and praise you as my Lord in every moment of my life. 



 

The problem (or promise?) of American liberalism




It’s hard to envision the Nordic model ever finding a home on these shores.

What Nordic life tells us, in other words, is how steep and ambitious the path of American liberalism is. Conservative social ideals are notorious for their mercenary spirit and wishful self-justifications—the Thatcherite talks of neighbors helping one another and themselves as homeless people fill the sidewalks. Yet a certain hardness of heart rests in the practice of modern American liberalism, too. We have registered our willingness to make the Faustian deal that the Swedes have not. The possibility of having a truly Iranian-American life, or enjoying deep-Appalachian bluegrass, is important to our national variety. And, to let these cultures thrive on their own, we’ve agreed to let some of our people, by our withheld intervention, be thrown under the bus.

Because this is America, we hope for better. But we aren’t hung up on our tendencies to fall short. A Boothian observer of the U.S. would notice its capacity to overpromise and underdeliver. (By contrast, when the Finns are confronted with their educational achievements their impulse is apparently to doubt the data.) Like many Enlightenment-born nations, we declared our principles at the start—liberty, equality, the pursuit of happiness—and trusted that any friction among these ideas would be sorted out, eventually, in the churn of civic life. The trust continues. Progress is slow. While Nordic people have made the best of what they have, Americans persist in gambling on something better, and yet settling for something worse.

Nathan Heller, Northern lights: Do the Scandinavians really have it all figured out? 


2/3/15

The history of loving to read




Romance structures literary life, and to be a reader is, often, to follow its choreography, from susceptibility and discovery (“I just saw it there in the bookstore!”) to infatuation, intimacy, identification, and obsession. We connect with books in an intellectual way, but the most valuable relationships we have with them are emotional; to say that you merely admire or respect a book is, on some level, to insult it. Feelings are so fundamental to literary life that it can be hard to imagine a way of relating to literature that doesn’t involve loving it. Without all those emotions, what would reading be?

. . . Some readers read because they want to know about the here and now. But, when a young person’s favorite book is “The Great Gatsby” or “Jane Eyre,” something else is going on. That sort of reader is, as Lynch puts it, “striving to bridge the distance between self and other and now and then.”

. . .  One might imagine that e-books and the Web could deromanticize reading. But, far from being on the wane, it’s possible that our romantic relationship with literature is bleeding over into other parts of cultural life. The rise of TV and movie fandom, for example—with its generous affection turning, when it’s betrayed, into lavish scorn—seems to be an extension of our love affair with books. It’s a way of loving a canon in the present tense.

Joshua Rothman, Review of "Loving Literature: A Cultural History" by Deidre Shauna Ly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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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즐거움

1/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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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1/22/15

Oh How he loves

. . . The Son of God was not created but took part in creation and has lived throughout all eternity "in the bosom of the Father" (John 1:18)--that is, in a relationship of absolute intimacy and love. But at the end of his life he was cut off from the Father.
     There may be no greater inner agony than the loss of a relationship we desperately want. If a mild acquaintance turns on you, condemns and criticizes you, and says she never wants to see you again, it is painful. If someone you're dating does the same thing, it is qualitatively more painful. But if your spouse does this to you, or if one of your parents does this to you when you're still a child, the psychological damage is infinitely worse.
     We cannot fathom, however, what it would be like to lose not just spousal love or parental love that has lasted several years, but the infinite love of the Father that Jesus had from all eternity. Jesus' sufferings would have been eternally unbearable. Christian theology has always recognized that Jesus bore, as the substitute in our place, the endless exclusion from God that the human race has merited. In the Garden of Gethsemane, even the beginning and foretaste of this experience began to put Jesus into a state of shock. . . On the cross, Jesus's cry of dereliction--"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is a deeply relational statement. [New Testament scholar Bill] Lane writes: "The cry has a ruthless authenticity. . . Jesus did not die renouncing God. Even in the inferno of abandonment he did not surrender his faith in God but expressed his anguished prayer in a cry of affirmation, 'My God, my God,'" Jesus still uses the language of intimacy--"my God"--even as he experiences infinite separation from the Father.

The Reason for God by Timothy Keller, pp. 29-30

And we are His portion and He is our prize
Drawn to redemption by the grace in His eyes
If His grace is an ocean, we're all sinking

And heaven meets earth like an unforeseen kiss
And my heart turns violently inside of my chest
I don't have time to maintain these regrets
When I think about the way

Oh, how He loves us, oh
Oh, how He loves us, how He loves all
How He loves


How could God allow suffering? 1

     I knew a man in my first parish who had lost most of his eye sight after he was shot in the face during a drug deal gone bad. He told me that he had been an extremely selfish and cruel person, but he had always blamed his constant legal and relational problems on others. The loss of his sight had devastated him, but it had also profoundly humbled him. "As my physical eyes were closed, my spiritual eyes were opened, as it were. I finally saw how I'd been treating people. I changed, and now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I have friends, real friends. It was a terrible price to pay, and yet I must say it was worth it. I finally have what makes life worthwhile."
     Though none of these people are grateful for the tragedies themselves, they would not trade the insight, character, and strength they had gotten from them for anything. With time and perspective most of us can see good reasons for at least some of the tragedy and pain that occurs in life. Why couldn't it be possible that, from God's vantage point, there are good reasons for all of them?
     If you have a God great and transcendent enough to be mad at because he hasn't stopped evil and suffering in the world, then you have (at the same moment) a God great and transcendent enough to  have good reasons for allowing it to continue that you can't know. Indeed, you can't have it both ways.

The Reason for God by Timothy Keller, p. 25

Therefore, in order to keep me from becoming conceited, I was given a thorn in my flesh, a messenger of Satan, to torment me. Three times I pleaded with the Lord to take it away from me. But he said to me,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Therefore I will boast all the more gladly about my weaknesses, so that Christ’s power may rest on me. That is why, for Christ’s sake, I delight in weaknesses, in insults, in hardships, in persecutions, in difficulties. For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2Corinthians 12:7b-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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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low God's example, therefore, as dearly loved children and walk in the way of love, just as Christ loved us and gave himself up for us as a fragrant offering and sacrifice for God. . . For you were once in darkness, but now you are light in the Lord. Live as children of light (for the fruit of the light consists in all goodness, righteousness and truth) and find out what pleases the Lord. Have nothing to do with the fruitless deeds of darkness, but rather expose them. (Ephesians 5:1-2, 8-11)


1 Walk in the way of love
2 Find out what pleases the Lord
3 Have nothing to do with the fruitless deeds of darkness



1/20/15

150120 새벽기도


After this, Jesus went out and saw a tax collector by the name of Levi sitting at his tax booth. "Follow me," Jesus said to him, and Levi got up, left everything and followed him. (Luke 5:27-28)

제자로 사는 법

1/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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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ohn 2:5-6 But if anyone obeys his word, love for God is truly made complete in him: Whoever claims to live in him must live as Jesus did.


빈 공간을 자꾸 다른 것으로 채워넣으려 합니다.
어리석인 일을 반복하지 않길
붙잡아 주세요. 채워 주세요.

1/17/15

God is love



Dear friends,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comes from God. Everyone who loves has been born of God and knows God. . . There is no fear in love. But perfect love drives out fear, because fear has to do with punishment. The one who fears is not made perfect in love. (1John 4:7, 18)

Lord, I want to know you more this year.
Please fill my heart with your love,
so I may not use others to satisfy my selfish desires
but truly love them and serve them.

1/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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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s, then, should expect to find nonbelievers who are much nicer, kinder, wiser, and better than they are. Why? Christian believers are not accepted by God because of their moral performance, wisdom, or virtue, but because of Christ's work on their behalf. Most religious and philosophies of life assume that one's spiritual status depends on your religious attainments. This naturally leads adherents to feel superior to those who don't believe and behave as they do. The Christian gospel, in any case, should not have that effect.

The Reason for God by Timothy Keller, p. 20

1/14/15

Faith claims


Skeptics believe that any exclusive claims to a superior knowledge of spiritual reality cannot be true. But this objection is itself a religious belief. It assumes God is unknowable, or that God is loving but not wrathful, or that God is an impersonal force rather than a person who speaks in Scripture. All of these are unprovable faith assumptions. In addition, their proponents believe they have a superior way to view things. They believe the world would be a better place if everyone dropped the traditional religions' views of God and truth and adopted theirs. Therefore, their view is also an "exclusive" claim about the nature of spiritual reality. If all such views are to be discouraged, this one should be as well. If it is not narrow to hold this view, then, there is nothing inherently narrow about holding to traditional religious beliefs.

The Reason for God by Timothy Keller, pp. 12-13

1/9/15

Unattractive churches



Jesus' teaching consistently attracted the irreligious while offending the Bible-believing, religious people of his day. However, in the main, out churches today do not have this effect. The kind of outsiders Jesus attracted are not attracted to contemporary churches, even our most avant-garde ones. We tend to draw conservative, buttoned-down, moralistic people. The licentious and liberated or the broken and marginal avoid church. That can only mean one thing. If the preaching of our ministers and the practice of our parishioners do not have the same effect on people that Jesus had, then we must not be declaring the same message that Jesus did. If your churches aren't appealing to younger brothers, they must be more full of elder brothers than we'd like to think.

The Prodigal God by Timothy Keller, pp. 18-19

The parable of two lost sons

. . . What did the older son most want? If we think about it we realize that he wanted the same thing as his brother. He was just as resentful of the father as was the younger son. He, too, wanted the father's goods rather than the father himself. However, while the younger brother went far away, the elder brother stayed close and "never disobeyed." That was his way to get control. His unspoken demand is, "I have never disobeyed you! Now you have to do things in my life the way I want them to be done."
     The hearts of the two brothers were the same. Both sons resented their father's authority and sought ways of getting out from under it. They each wanted to get into a position in which they could tell the father what to do. Each one, in other words, rebelled--but one did so by being very bad and the other by being extremely good. Both were alienated from the father's heart; both were lost sons.
     Do you realize, then, what Jesus is teaching? Neither son loved the father for himself. They both were  using the father for their own self-centered ends rather than loving, enjoying, and serving him for his own sake.

The Prodigal God by Timothy Keller, pp. 41-42

2015년,
1 나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깊이 알고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길
2 사람을 섬기는 일이
  의무나 나를 높이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함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시작되길
3 나의 삶 전체가
  사랑하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