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15
광야에서는 무엇을 쟁취하려는 믿음보다 그저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셨음을 인정하는 믿음이 더 필요한 것 같다. 히틀러에게 추방당해 미국으로 망명한 신학자 폴 틸리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큰 슬픔과 고통에 직면했을 때일수록 은혜가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 . 지금은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말라. 언젠가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구하지 말고, 아무것도 애써 보여주려고 하지 말고, 아무 것도 각오하지 말라. 그저 네가 받아들여졌다는 사실만을 받아들여라."
이것이 광야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삶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주어지는 상황과 순서대로 살아도 하나님의 은혜는 흘러나온다. 광야 생활에도 즐거움은 있다. 느린 걸음이 주는 여유가 있다. 참 신기하다. 천천히 걸을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빨리 달릴 때 불평이 더 많았고, 천천히 걸으니 오히려 감사할 것이 더 많아 보인다. 더 풍성한 삶의 이치를 발견한다. 내 고통을 아파할 시간도 얻는다, 고통당하는 이들의 아픔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애쓰지 않고 고요히 있어도 거저 위로를 얻는다. 연약한 나와 우리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광야의 시간이 느린 이유는, 아픈 사람은 충분히 아픔을 느끼라는, 울어야 할 사람은 실컷 울고, 분노할 사람은 실컷 분노하라는 뜻이 아닐까? 감정을 억누르며 고통을 외면한 채 그렇게 살지 말라고, 광야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다. 광어는 삶의 부조리로 인한 고통과 억울함을 견디게 한다. 광어는 극복해야할 곳이 아니라 그저 꿋꿋이 지나가는 곳이다. 포기하지 않고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김병년, <난 당신이, 좋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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