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19

The Secret Joy of a Surrendered Life: I Give up, Laura Story


So when the battle for control begins again--and it will--what do I do?


  • I acknowledge the struggle. (Denying it doesn't help. I know. I've tried.)
  • I confess my strong desire to be in charge, and I name my fear of not being in charge. 
  • I admit that my emotions do not always tell me the truth about my circumstances or about my God.
  • I search God's word for truth and keep it always before me. I read it. I pray it. I sing it. I write it on my hand with a ballpoint pen if I need to. I have it ready.
  • I remind myself of God's faithfulness to his children throughout history and of his faithfulness to me. 

Then I do the next thing I would do if I were surrendered to God on this day, in this situation, at this moment. Because the smallest act of trusting obedience can serve to remind me of the one who loves, me, who sees me, who has my back, and who's already gone out ahead of me to make a way. 

And finally, I relax. 
Because I don't need more of me on the throne.
I need more of him. 

God, I don't want to compete with you for who is in charge of my life. You know me--all my fears, impatience, and, at times, even my unbelief. Holy God, Creator of the universe, help me to daily surrender to you as the Lord of my life. 





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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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함께한 고백 삶에 채우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 담아 주소서 
주의 품으신 계획 온전히 이루소서 
나의 삶의 결이 주의 길을 닮게 하소서

매일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연약한 저이지만
결국 이렇게 모인 하루하루가 
주님과 함께한 삶의 고백이 되길 소망합니다.
나의 삶의 결이 주님의 길을 닮게 하소서.

아버지, 곳에서의 시간들을 통해 
주님을 알게 하시고 붙잡게 하시니 
그것 하나만으로 무엇과도 바꿀 없음을 고백합니다

다시 어려운 시기 앞에
깊이 알게 주님을 사모함으로 나아갈 있도록 도우소서.  
주님과 함께한 새로운 고백이 쌓이게 하소서





2/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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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lm 46

For the director of music. Of the Sons of Korah. According to alamoth.[b] A song.

God is our refuge and strength,
    an ever-present help in trouble.
Therefore we will not fear, though the earth give way
    and the mountains fall into the heart of the sea,
though its waters roar and foam
    and the mountains quake with their surging.[c]
There is a river whose streams make glad the city of God,
    the holy place where the Most High dwells.
God is within her, she will not fall;
    God will help her at break of day.
Nations are in uproar, kingdoms fall;
    he lifts his voice, the earth melts.
The Lord Almighty is with us;
    the God of Jacob is our fortress.
Come and see what the Lord has done,
    the desolations he has brought on the earth.
He makes wars cease
    to the ends of the earth.
He breaks the bow and shatters the spear;
    he burns the shields[d] with fire.
10 He says,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I will be exalted among the nations,
    I will be exalted in the earth.”
11 The Lord Almighty is with us;
    the God of Jacob is our fortress.

환난 중에 만날 야곱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2/7/18

<어떤 길을 가든 그 길과 하나가 되라> by 류시화

대학 시절, 자취방 얻을 돈이 없어 학교 숲에서 밤을 지새곤 했다. 비가 내리거나 추운 날은 문리대 휴게실 창문을 넘어 들어가 커튼을 뜯어 덮고 잔 뒤 아침 일찍 다시 걸어놓고 나왔다. 자연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장발에 수세미머리를 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신발 밑창은 떨어져 걸을 때마다 펄럭이고, 밤을 견디기 위해 여름에도 검정 바바리코트를 들고 다녔다.
누가 봐도 전혀 학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자존심 때문에 사정을 밝히지 않아서 오해를 많이 받았다. 문학한다는 핑계로 일부러 지저분하게 다닌다고 비판하는 교수도 있었고, 정신이상자라고 멀리하는 이도 있었다. 나를 특히 싫어한 국문학과 선배가 있었는데, 그는 늘 깨끗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회사원처럼 서류 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의 눈에 내가 현실부정적이고 퇴폐적인 데카당스로 보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마주칠 때마다 훈계를 늘어놓았고, 나는 일부러 눈을 이상하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내 눈에는 그가 보들레르나 랭보의 시조차 읽어 본 적 없는 위선적인 계몽주의 추종자로 보였다. 그가 편집장으로 있는 대학신문이 나에 대해 '아름다운 캠퍼스의 봄을 흐려 놓는 거지'로 매도하는 기사를 실었을 때 그와 나의 악감정은 극에 달했다. 톱을 들고 가서 학생신문사의 책상을 반으로 잘라 놓으려고 했지만 관두고 데카당스답게 입으로 머리를 불어넘기며 다녔다.
이후 졸업할 때까지 그와 나는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투명인간에 불과했다. 그는 대학원을 다녔고, 나는 졸업 즉시 뒤돌아보지 않고 학교를 떠났다. 그가 석박사학위를 따는 동안 나는 인도의 먼지 이는 길들을 방황했고, 그가 문학평론가로 등단하고 국문학과 교수가 되었을 때 나는 히말라야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와 나는 영혼이 다른 사람이었다.
20년이 흘러 한 문학지에서 나를 특집으로 다루었고, 좌담회의 질문자로 그가 나왔다. 세월이 서로에 대한 앙금을 지운 후였다. 좌담회가 끝나고 그와 단둘이 마주앉은 자리에서 내가 그에게, 학생 시절에 양복에 넥타이를 하고 다닌 이유를 물었다. 그는 뜻밖에도 자신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담담히 대답했다. 학비가 없어 장학금을 받기 위해 어떻게든 대학신문사 편집장으로 일해야 했으며, 그래서 항상 단정한 복장을 해야만 했다고 했다. 그는 자취방을 얻을 수 없어 신문사 사무실에서 잠을 자곤 했다고 덧붙였다.
그도 내가 그 시절 가난해서 벚꽃 휘날리는 봄날의 캠퍼스를 노숙자처럼 하고 돌아다녔다는 것을 알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함께 웃었다. 그와 나는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영혼이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방식이 달랐을 뿐, 우리 둘 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몸짓을 다한 것이다. 그는 그대로 학생신문사 책상 위에서 웅크리고 자고, 나는 나대로 휴게실 커튼을 덮고 자면서.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 않았다.
한 구도자가 참나를 찾아서 길을 떠났다. 돌을 뒤집어 보고, 나뭇가지를 흔들어 보고, 꽃을 들여다보면서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이것도 내가 아니다. 저것도 내가 아니다.' 하며 하나씩 부정해 나갔다. 강과 바다, 번개와 폭풍우, 거대한 산도 내가 아니었다. 변화하는 현상인 그것들은 어떤 것도 절대적인 참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명예도 지위도 참나가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세속적인 지각과 감각적인 경험도 참나가 아니었다. 그렇게 세상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확인한 끝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실체가 없는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머리를 젖히고 하늘을 향해 웃었다. 무엇이 참나가 아닌지를 발견함으로써 무엇이 참나인지를 발견한 것이다.
또 다른 구도자가 참나를 찾아서 집을 나섰다. 그의 눈에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그 자신이었다. 코끼리도 자신이고, 코끼리 위에 타고 가는 원숭이도 자신이고, 원숭이를 보고 소리를 지르는 앵무새도, 그 앵무새를 어깨에 얹고 가는 사람도 그 자신이었다. 산이든 강이든 광야든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이것도 나이다. 저것도 나이다.' 하며 확인해 나가다 보니 모든 것이 나이며 나 자신과 분리할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세상 끝까지 가 보았으나 자신이 아닌 것은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머리를 젖히고 별들을 향해 웃었다. 모든 것이 나 자신임을 확고하게 긍정함으로써 참나를 발견한 것이다.
첫 번째 구도자의 길을 고대 인도의 베탄타 철학에서는 '네티 네티(아니다, 아니다)' 즉 부정의 길이라 부른다. 두 번째 구도자의 길은 '이티 이티(그렇다, 그렇다)' 즉 긍정의 길이다. 두 길은 사실 다르지 않으며, 같은 목적지에 이른다. 추구의 여정에서는 두 가지 잘못밖에 없다. 하나는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끝까지 가지 않는 것이다. 붓다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묻는 제자에게 말했다.
"어떤 길을 가든 그 길과 하나가 되라."
우리가 길 자체가 되기 전에는 그 길을 따라 여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8/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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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염려와 걱정에 갇혀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기도할 자리로 나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꾸만 제힘으로 해결해 보려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믿음으로 아버지께 맡겨드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무책임하게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까지도 주관하시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제 문제를 들고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하소서. 주님 제 계획과 제 때가 아니라 주님의 계획과 때를 잠잠히 기다리며 항상 감사하게 하소서.

8/18/16

Love economics



But the gospel, brought home to your heart by the Spirit, can make you happy enough to be humble, giving you an internal fullness that frees you to be generous with the other even when you are not getting the satisfaction you want out of the relationship. Without the help of the Spirit, without a continual refilling of your soul's tank with the glory and love of the Lord, such submission to the interests of the other is virtually impossible to accomplish for any length of time without becoming resentful. I call this "love economics." You can only afford to be generous if you actually have some money in the bank to give. In the same way, if your only source of love and meaning is your spouse, then anytime he or she fails you, it will not just cause grief but a psychological cataclysm. If, however, you know something of the work of the Spirit in our life, you have enough love "in the bank" to be generous to your spouse even when you are not getting much affection or kindness at the moment. 

The Meaning of Marriage by Timothy Keller, p. 56

We make a living by what we gain, but we live life by what we give. 
주님안에 충만하길  

Woundedness & self-centeredness


When you begin to talk to wounded people, it is not long before they begin talking about themselves. They're so engrossed in their own pain and problems that they don't realize what they look like to others. They are not sensitive to the needs of others. They don't pick up the cues of those who are hurting, or, if they do, they only do so in a self-involved way. That is, they do so with a view of helping to "rescue" them in order to feel better about themselves. They get involved with others in an obsessive and controlling way because they are actually meeting their own needs, though they deceive themselves about this. We are always, always the last to see our self-absorption. Our hurts and wounds can make our self-centeredness even more intractable. When you point out selfish behavior to a wounded person, he or she will say, "Well, maybe so, but you don't understand what it is like." The wounds justify behavior.

The Meaning of Marriage by Timothy Keller (p. 60)

여러 관계속의 이기심 보게 하심 감사
상처로 가려진 이기적인 마음 보게 하심 감사 

8/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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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s disciples came and took his body and buried it. Then they went and told Jesus. When Jesus heard what had happened, he withdrew by boat privately to a solitary place. Hearing of this, the crowds followed him on foot from the towns. When Jesus landed and saw a large crowd, he had compassion on them and healed their sick.
As evening approached, the disciples came to him and said, “This is a remote place, and it’s already getting late. Send the crowds away, so they can go to the villages and buy themselves some food.”
 Jesus replied, “They do not need to go away.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We have here only five loaves of bread and two fish,” they answered.
“Bring them here to me,” he said. And he directed the people to sit down on the grass. Taking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and looking up to heaven, he gave thanks and broke the loaves. Then he gave them to the disciples, and the disciples gave them to the people.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and the disciples picked up twelve basketfuls of broken pieces that were left over. The number of those who ate was about five thousand men, besides women and children.

Matthew 14:12-21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내가 걸어 갈 때 길이 되고
살아갈 때 삶이 되는
그 곳에서 예배하네


사랑하는 주님, 슬픔 가운데서도 절막한 저희를 향해 compassion을 가지셨던 주님,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시는 고통 가운데서도 저희를 향한 구원을 이루셨던 주님, 그런 주님을 삶의 한절이라도 닮아가길 기도합니다. 주님 앞으로의 삶가운데 또 힘든 계절이 찾아올지라도 감정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기억하며, 주님이 맡기신 일에 흔들림 없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부족한 저이지만 주님의 일가운데 사용하여주소서.

3/31/16

진정한 지혜 by 유기성 목사


Now listen, you who say, “Today or tomorrow we will go to this or that city, spend a year there, carry on business and make money.” Why, you do not even know what will happen tomorrow. What is your life? You are a mist that appears for a little while and then vanishes. Instead, you ought to say, “If it is the Lord’s will, we will live and do this or that.” As it is, you boast in your arrogant schemes. All such boasting is evil. If anyone, then, knows the good they ought to do and doesn’t do it, it is sin for them. (James 4:13-17)

주님께서 우리에게 미래를 알지 못하게 하심은 하나님의 진정한 지혜이다. 우리가 할일은 매일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뜻에 따라 순종하며 나의 미래를 주님의 계획가운데 맡겨드리는 것. 그리할 때 우리의 미래는 주님의 놀라운 축복이다.

주님 저의 이기적인 계획은 십자가 위에 주님과 함께 죽었음을 담대히 고백하게 하소서.  매일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미루지 않게 하소서. 

3/14/16

0314 감사



주님, 저의 필요를 채우시고 공급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마음을 다하여 섬기도록 도우소서. 자만하지 않도록 하시고 주만 바라보게 하소서. 


3/13/16

사명의 축복 by 유기성 목사
















어제 주일 설교는 준비하는 과정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한 주간 내내, 말씀이 머리 속에서 맴돌 뿐, 좀처럼 설교문으로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삶으로 예배하라’ 제목은 분명했지만, 자꾸 율법적인 설교로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왔습니다.
토요일 밤 까지 ‘주님이 주셨다’는 확신이 없는 설교문만 붙잡고 마음은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말씀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은 붙잡았지만, ‘이것이 그 말씀인가?’ 몇 번이고 갈등하였습니다. 
제목만 선포하고 내려와야 하나, 고민하다가, 토요일 밤 시간이 늦어 자리에 누웠습니다.
누워서 혼자 말처럼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문은 거의 다 외운 상태였는데, 설교하면서 전혀 준비하지 않은 내용이 제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급히 메모를 했습니다. “그래, 그 말씀이었어”
삶으로 예배하는 것은 결코 부담도 무거운 명령도 아니었습니다.
복된 소식이고 구원으로의 초청이었습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설교자에게 전할 말씀을 받은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 새벽, 당황스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어나 설교문을 다듬으려고 컴퓨터를 켜니, 컴퓨터가 초기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놀란 마음에 급히 교회로 달려 나와, 교회 컴퓨터로 주일 설교문을 다시 정리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어제 밤 주신 메시지는 그대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아니 더 분명해 졌습니다.
1부 예배 전, 예배와 말씀 증거를 위하여 기도하는데, 감사 기도가 되었습니다.
설교문을 정리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주신 말씀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 ‘너희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라’
그것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새롭게 눈이 뜨인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한 자만이 누리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설교 준비하다가 ‘너무 힘들다!’ 탄식했던 일이 생각나 회개했습니다.
오후에 장로 권사 취임예배를 드리면서, 사명이 무겁다고 생각한 것을 회개 하였습니다.
사명 때문에 제 영혼이 살아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해야만 할 일이 때로 무거운 짐처럼 여겨집니다.
사명이 힘들다고 철없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좀 쉬었으면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제가 살았습니다.
영이 살았고, 마음이 살았고, 삶이 변했습니다.
사명이 없어지면 편한 것이 아니라 영이 죽고 마음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직 나는 죽고 예수로 살기만 하면 사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크신 복입니다.

힘들지만 지금의 일 가운데 역사하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하나님 안에 살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3/12/16

0312 감사
















항상 기다려주시고 보호해주시며 공급해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공부하는 가운데 마음 따듯한 지도 교수님을 만나게 해주시고 연구할 수 있는 장소와 오픈된 사람들을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아직도 매일이 불안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주님께 더욱 의지하는 법을 배울 것을 기대합니다. 더이상 회피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나서서 앞길을 계획하며 그 계획에서 벗어나기를 불안해하기 보다, 주님께서 열어주신 그 자리에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길 기도합니다. 지금이 힘들지만 이 과정을 통해 주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고난을 즐거이 받으며 오히려 바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2/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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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he Jews who had believed him, Jesus said, 
“If you hold to my teaching, you are really my disciples.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John 8:31-32)

주님, 오직 진리가 저를 자유케 함을 참으로 믿게 하소서. 
다른 허망한 것들을 좇지 않게 하소서. 

10/17/15

동행


 

Uzziah was sixteen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in Jerusalem fifty-two years. His mother’s name was Jekoliah; she was from Jerusalem. He did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just as his father Amaziah had done. He sought God during the days of Zechariah, who instructed him in the fear of God. As long as he sought the Lord, God gave him success . . . His fame spread far and wide, for he was greatly helped until he became powerful. 16 But after Uzziah became powerful, his pride led to his downfall. He was unfaithful to the Lord his God, and entered the temple of the Lord to burn incense on the altar of incense. 17 Azariah the priest with eighty other courageous priests of the Lord followed him in. 18 They confronted King Uzziah and said, “It is not right for you, Uzziah, to burn incense to the Lord. That is for the priests, the descendants of Aaron, who have been consecrated to burn incense. Leave the sanctuary, for you have been unfaithful; and you will not be honored by the Lord God.”
19 Uzziah, who had a censer in his hand ready to burn incense, became angry. While he was raging at the priests in their presence before the incense altar in the Lord’s temple, leprosy broke out on his forehead. . . King Uzziah had leprosy until the day he died. He lived in a separate house—leprous, and banned from the temple of the Lord.

2 Chronicles 26:3-19

아버지, 아버지께서 절 부르셨고 인도하셨습니다. 욕심 많고 교만한 저를 인내하시고 인도하신 당신만을 바라보며 이제는 당신과 동행하며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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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For a song in itself
Is not what you have required
You search much deeper within
Through the way things appear
You're looking into my heart

I'm coming back to the heart of worship
And it's all about you
It's all about you, Jesus
I'm sorry Lord for the things I've made it
When it's all about you
It's all about you, Jesus


The Heart of Worship by Matt Redman

예배 가운데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만 보게 하소서!

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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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now, this is what the Lord says—
    he who created you, Jacob,
    he who formed you, Israel:
“Do not fear,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summoned you by name; you are mine.

When you pass through the waters,
    I will be with you;
and when you pass through the rivers,
    they will not sweep over you.
When you walk through the fire,
    you will not be burned;
    the flames will not set you ablaze.

Isaiah 43:1-2

거센 물길과 불속을 지날지라도 
나를 만드시고 부르신 여호와가 나와 함께 하시나니
그를 믿자 두려워 말자



8/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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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자신의 느낌에 따라 평가할 때가 너무나 많다. 이것은 싱크대가 망가지고, 아이들이 징징거리며, 내야 할 고지서들이 쌓이고, 남편이나 아내가 실직한 상황에서, 배우자가 서로를 얼마나 로맨틱하게 느끼느냐에 따라 결혼 생활을 평가하는 것과 같다. 사실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로우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랑을 분명하게 경험하고 있지 못할 때라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항상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의 믿음은 그분의 선물이며, 이 믿음은 우리의 영적 훈련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그분의 은혜로 가능하다. 

나는 이책에서 습관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좋은 영적 습관들이 주는 큰 유익은 긍정적이며 주관적인 느낌이 없을 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의 시간을 가지며, 예배하고,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객관적으로 연습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마르바 던,<안식> 중

8/15/15

Celebration

 

축하는 고난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오히려 "깊은 고통 가운데 생겨난 기쁨이 축하의 순간들을 통해 커진다. . . 바르게 이해하자면, 축하는 삶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점점 깨닫는 가운데 그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르바 던, <안식>中

7/20/15

Quadosh



성경에서 가장 두드러진 단어 가운데 하나는 카도쉬(quadosh), 즉 거룩이다. 이 단어는 다른 어떤 단어보다도 신성의 신비와 위엄을 상징한다. 세계사에서 최초로 거룩의 대상이 된 것은 무엇이었는가? 산이었는가? 제단이었는가?

카도쉬라는 특별한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 창세기에서 창조기사 마지막에, 바로 시간에 대해서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 . "하나님께서 이 일곱째 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창 2:3). 창조 기사에는 공간적 차원에서 거룩하게 되었다는 대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적인 사고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다. 신화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후 성소가 세워질 거룩한 곳--거룩한 산이나 거룩한 샘--을 창조하셨을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거룩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시간 속의 거룩, 곧 안식일인 것으로 보인다.

. . . 현대 기독교에서 우리는 이러한 거룩한 시간의 개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우리는 자신의 성소에 집중하며, '교회'가 기독교 공동체의 사건들과 그 공동체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가운데서, 즉 시간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이 성소를 교회라고 부른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대신에, 예배당에 간다는 의미에서 '교회에 가고' 거기서 하나님을 발견하기를 기대힌다.

안식의 시간과 그 시간의 거룩함을 누리는 데 사용되는 물건들은 그 자체로써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더 분명해지게 하는 수단으로써 가치가 있을 뿐이다. . . 우리가 물질과 공간에 대한 소유를 그치고 안식일을 지킬 때, 시간이 우리를 소유하게 된다. 

마르바 던, <안식> 중

Security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안전이며, 우리는 성공적으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어리석은 짓을 다 한다. . . 우리는 자신을 경제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해줄 방법을 택하려고 여러 곳에 투자를 한다. 미국은 자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미사일과 폭탄과 발사 시스템을 점점 더 많이 만든다. 그런데 이 모든 것과 관련하여 우스꽝스러운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이처럼 거대한 핵무기 확산은 누군가가 사고로 또는 화가 나서 버튼을 눌러 우리 모두를 멸망시킬 위험을 증가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해를 끼친다. 우리는 더 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남보다 앞서가고 승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착취한다.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린다. 그러기에 감정적으로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가면 뒤에 자신을 숨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심히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안전을 확보하려는 우리의 시도 자체가, 국가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시도와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그 안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전문직, 경제, 정치, 기술적인 해결책, 이 모든 것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안전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숨기는 환영의 거미줄이다. 전문직 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주식 시장은 붕괴될 수 있다. 정당은 큰 실수를 할 것이다. 기술적인 해결책은 해결하는 문제보다 더 많은 문제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동일하다. 우리는 언약에 신실하신 그분을 믿을 수 있다.

. . .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관하기를 그칠 때, 우리는 노예처럼 비굴한 의존심이 아니라 더 큰 자유를 누리게 된다. 나는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려고 애쓰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은사와 자원을 관리하는 충성스런 청지기가 되기를 추구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철저히 누리는 특권을 선택할 것이다. 너무나 많은 상황이 나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염려한다고 해서 내게 그다지 유익할 것이 없다. 그러나 모든 역사 위에 주님이 계심을 믿는다면--그리스도의 흰말이 전쟁의 붉은 말, 경제의 검은 말, 고난과 죽음의 청황색 말과 함께 달리며 역사의 과정을 주관한다는 것을 안다면(계 6;1-8)--나는 나의 통제를 벗어난 힘에 대한 걱정을 그칠 수 있을 것이다.

삶에 있어서 나의 책임은, 나의 창조자와 그분의 뜻을 사랑함으로써 나를 창조하신 목적에 가능한 한 충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때 날마다 자유로이 그분과 동행하는 모험을 즐기며, 내가 하는 모든 것과 내가 되어 가는 전체 과정 속에서 그분의 임재를 연습할 수 있다.

마르바 던, <안식>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