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15

동행


 

3 Uzziah was sixteen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in Jerusalem fifty-two years. His mother’s name was Jekoliah; she was from Jerusalem. 4 He did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just as his father Amaziah had done. 5 He sought God during the days of Zechariah, who instructed him in the fear of God. As long as he sought the Lord, God gave him success . . . His fame spread far and wide, for he was greatly helped until he became powerful. 16 But after Uzziah became powerful, his pride led to his downfall. He was unfaithful to the Lord his God, and entered the temple of the Lord to burn incense on the altar of incense. 17 Azariah the priest with eighty other courageous priests of the Lord followed him in. 18 They confronted King Uzziah and said, “It is not right for you, Uzziah, to burn incense to the Lord. That is for the priests, the descendants of Aaron, who have been consecrated to burn incense. Leave the sanctuary, for you have been unfaithful; and you will not be honored by the Lord God.”
19 Uzziah, who had a censer in his hand ready to burn incense, became angry. While he was raging at the priests in their presence before the incense altar in the Lord’s temple, leprosy broke out on his forehead. . . King Uzziah had leprosy until the day he died. He lived in a separate house—leprous, and banned from the temple of the Lord.

2 Chronicles 26:3-19

아버지, 아버지께서 절 부르셨고 인도하셨습니다. 욕심 많고 교만한 저를 인내하시고 인도하신 당신만을 바라보며 이제는 당신과 동행하며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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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For a song in itself
Is not what you have required
You search much deeper within
Through the way things appear
You're looking into my heart

I'm coming back to the heart of worship
And it's all about you
It's all about you, Jesus
I'm sorry Lord for the things I've made it
When it's all about you
It's all about you, Jesus


The Heart of Worship by Matt Redman

예배 가운데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만 보게 하소서!

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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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now, this is what the Lord says—
    he who created you, Jacob,
    he who formed you, Israel:
“Do not fear,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summoned you by name; you are mine.

When you pass through the waters,
    I will be with you;
and when you pass through the rivers,
    they will not sweep over you.
When you walk through the fire,
    you will not be burned;
    the flames will not set you ablaze.

Isaiah 43:1-2

거센 물길과 불속을 지날지라도 
나를 만드시고 부르신 여호와가 나와 함께 하시나니
그를 믿자 두려워 말자



8/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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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자신의 느낌에 따라 평가할 때가 너무나 많다. 이것은 싱크대가 망가지고, 아이들이 징징거리며, 내야 할 고지서들이 쌓이고, 남편이나 아내가 실직한 상황에서, 배우자가 서로를 얼마나 로맨틱하게 느끼느냐에 따라 결혼 생활을 평가하는 것과 같다. 사실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로우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랑을 분명하게 경험하고 있지 못할 때라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항상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의 믿음은 그분의 선물이며, 이 믿음은 우리의 영적 훈련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그분의 은혜로 가능하다. 

나는 이책에서 습관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좋은 영적 습관들이 주는 큰 유익은 긍정적이며 주관적인 느낌이 없을 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의 시간을 가지며, 예배하고,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객관적으로 연습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마르바 던,<안식> 중

8/15/15

Celebration

 

축하는 고난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오히려 "깊은 고통 가운데 생겨난 기쁨이 축하의 순간들을 통해 커진다. . . 바르게 이해하자면, 축하는 삶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점점 깨닫는 가운데 그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르바 던, <안식>中

7/20/15

Quadosh



성경에서 가장 두드러진 단어 가운데 하나는 카도쉬(quadosh), 즉 거룩이다. 이 단어는 다른 어떤 단어보다도 신성의 신비와 위엄을 상징한다. 세계사에서 최초로 거룩의 대상이 된 것은 무엇이었는가? 산이었는가? 제단이었는가?

카도쉬라는 특별한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 창세기에서 창조기사 마지막에, 바로 시간에 대해서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 . "하나님께서 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창 2:3). 창조 기사에는 공간적 차원에서 거룩하게 되었다는 대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적인 사고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다. 신화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후 성소가 세워질 거룩한 곳--거룩한 산이나 거룩한 샘--을 창조하셨을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거룩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시간 속의 거룩, 곧 안식일인 것으로 보인다.

. . . 현대 기독교에서 우리는 이러한 거룩한 시간의 개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우리는 자신의 성소에 집중하며, '교회'가 기독교 공동체의 사건들과 그 공동체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가운데서, 즉 시간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이 성소를 교회라고 부른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대신에, 예배당에 간다는 의미에서 '교회에 가고' 거기서 하나님을 발견하기를 기대힌다.

안식의 시간과 그 시간의 거룩함을 누리는 데 사용되는 물건들은 그 자체로써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더 분명해지게 하는 수단으로써 가치가 있을 뿐이다. . . 우리가 물질과 공간에 대한 소유를 그치고 안식일을 지킬 때, 시간이 우리를 소유하게 된다. 

마르바 던, <안식> 중

Security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안전이며, 우리는 성공적으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어리석은 짓을 다 한다. . . 우리는 자신을 경제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해줄 방법을 택하려고 여러 곳에 투자를 한다. 미국은 자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미사일과 폭탄과 발사 시스템을 점점 더 많이 만든다. 그런데 이 모든 것과 관련하여 우스꽝스러운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이처럼 거대한 핵무기 확산은 누군가가 사고로 또는 화가 나서 버튼을 눌러 우리 모두를 멸망시킬 위험을 증가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해를 끼친다. 우리는 더 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남보다 앞서가고 승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착취한다.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린다. 그러기에 감정적으로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가면 뒤에 자신을 숨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심히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안전을 확보하려는 우리의 시도 자체가, 국가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시도와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그 안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전문직, 경제, 정치, 기술적인 해결책, 이 모든 것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안전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숨기는 환영의 거미줄이다. 전문직 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주식 시장은 붕괴될 수 있다. 정당은 큰 실수를 할 것이다. 기술적인 해결책은 해결하는 문제보다 더 많은 문제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동일하다. 우리는 언약에 신실하신 그분을 믿을 수 있다.

. . .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관하기를 그칠 때, 우리는 노예처럼 비굴한 의존심이 아니라 더 큰 자유를 누리게 된다. 나는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려고 애쓰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은사와 자원을 관리하는 충성스런 청지기가 되기를 추구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철저히 누리는 특권을 선택할 것이다. 너무나 많은 상황이 나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염려한다고 해서 내게 그다지 유익할 것이 없다. 그러나 모든 역사 위에 주님이 계심을 믿는다면--그리스도의 흰말이 전쟁의 붉은 말, 경제의 검은 말, 고난과 죽음의 청황색 말과 함께 달리며 역사의 과정을 주관한다는 것을 안다면(계 6;1-8)--나는 나의 통제를 벗어난 힘에 대한 걱정을 그칠 수 있을 것이다.

삶에 있어서 나의 책임은, 나의 창조자와 그분의 뜻을 사랑함으로써 나를 창조하신 목적에 가능한 한 충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때 날마다 자유로이 그분과 동행하는 모험을 즐기며, 내가 하는 모든 것과 내가 되어 가는 전체 과정 속에서 그분의 임재를 연습할 수 있다.

마르바 던, <안식>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