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8

<어떤 길을 가든 그 길과 하나가 되라> by 류시화

대학 시절, 자취방 얻을 돈이 없어 학교 숲에서 밤을 지새곤 했다. 비가 내리거나 추운 날은 문리대 휴게실 창문을 넘어 들어가 커튼을 뜯어 덮고 잔 뒤 아침 일찍 다시 걸어놓고 나왔다. 자연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장발에 수세미머리를 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신발 밑창은 떨어져 걸을 때마다 펄럭이고, 밤을 견디기 위해 여름에도 검정 바바리코트를 들고 다녔다.
누가 봐도 전혀 학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자존심 때문에 사정을 밝히지 않아서 오해를 많이 받았다. 문학한다는 핑계로 일부러 지저분하게 다닌다고 비판하는 교수도 있었고, 정신이상자라고 멀리하는 이도 있었다. 나를 특히 싫어한 국문학과 선배가 있었는데, 그는 늘 깨끗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회사원처럼 서류 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의 눈에 내가 현실부정적이고 퇴폐적인 데카당스로 보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마주칠 때마다 훈계를 늘어놓았고, 나는 일부러 눈을 이상하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내 눈에는 그가 보들레르나 랭보의 시조차 읽어 본 적 없는 위선적인 계몽주의 추종자로 보였다. 그가 편집장으로 있는 대학신문이 나에 대해 '아름다운 캠퍼스의 봄을 흐려 놓는 거지'로 매도하는 기사를 실었을 때 그와 나의 악감정은 극에 달했다. 톱을 들고 가서 학생신문사의 책상을 반으로 잘라 놓으려고 했지만 관두고 데카당스답게 입으로 머리를 불어넘기며 다녔다.
이후 졸업할 때까지 그와 나는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투명인간에 불과했다. 그는 대학원을 다녔고, 나는 졸업 즉시 뒤돌아보지 않고 학교를 떠났다. 그가 석박사학위를 따는 동안 나는 인도의 먼지 이는 길들을 방황했고, 그가 문학평론가로 등단하고 국문학과 교수가 되었을 때 나는 히말라야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와 나는 영혼이 다른 사람이었다.
20년이 흘러 한 문학지에서 나를 특집으로 다루었고, 좌담회의 질문자로 그가 나왔다. 세월이 서로에 대한 앙금을 지운 후였다. 좌담회가 끝나고 그와 단둘이 마주앉은 자리에서 내가 그에게, 학생 시절에 양복에 넥타이를 하고 다닌 이유를 물었다. 그는 뜻밖에도 자신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담담히 대답했다. 학비가 없어 장학금을 받기 위해 어떻게든 대학신문사 편집장으로 일해야 했으며, 그래서 항상 단정한 복장을 해야만 했다고 했다. 그는 자취방을 얻을 수 없어 신문사 사무실에서 잠을 자곤 했다고 덧붙였다.
그도 내가 그 시절 가난해서 벚꽃 휘날리는 봄날의 캠퍼스를 노숙자처럼 하고 돌아다녔다는 것을 알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함께 웃었다. 그와 나는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영혼이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방식이 달랐을 뿐, 우리 둘 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몸짓을 다한 것이다. 그는 그대로 학생신문사 책상 위에서 웅크리고 자고, 나는 나대로 휴게실 커튼을 덮고 자면서.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 않았다.
한 구도자가 참나를 찾아서 길을 떠났다. 돌을 뒤집어 보고, 나뭇가지를 흔들어 보고, 꽃을 들여다보면서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이것도 내가 아니다. 저것도 내가 아니다.' 하며 하나씩 부정해 나갔다. 강과 바다, 번개와 폭풍우, 거대한 산도 내가 아니었다. 변화하는 현상인 그것들은 어떤 것도 절대적인 참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명예도 지위도 참나가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세속적인 지각과 감각적인 경험도 참나가 아니었다. 그렇게 세상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확인한 끝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실체가 없는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머리를 젖히고 하늘을 향해 웃었다. 무엇이 참나가 아닌지를 발견함으로써 무엇이 참나인지를 발견한 것이다.
또 다른 구도자가 참나를 찾아서 집을 나섰다. 그의 눈에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그 자신이었다. 코끼리도 자신이고, 코끼리 위에 타고 가는 원숭이도 자신이고, 원숭이를 보고 소리를 지르는 앵무새도, 그 앵무새를 어깨에 얹고 가는 사람도 그 자신이었다. 산이든 강이든 광야든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이것도 나이다. 저것도 나이다.' 하며 확인해 나가다 보니 모든 것이 나이며 나 자신과 분리할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세상 끝까지 가 보았으나 자신이 아닌 것은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머리를 젖히고 별들을 향해 웃었다. 모든 것이 나 자신임을 확고하게 긍정함으로써 참나를 발견한 것이다.
첫 번째 구도자의 길을 고대 인도의 베탄타 철학에서는 '네티 네티(아니다, 아니다)' 즉 부정의 길이라 부른다. 두 번째 구도자의 길은 '이티 이티(그렇다, 그렇다)' 즉 긍정의 길이다. 두 길은 사실 다르지 않으며, 같은 목적지에 이른다. 추구의 여정에서는 두 가지 잘못밖에 없다. 하나는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끝까지 가지 않는 것이다. 붓다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묻는 제자에게 말했다.
"어떤 길을 가든 그 길과 하나가 되라."
우리가 길 자체가 되기 전에는 그 길을 따라 여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